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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벵이 가을 인생

솔랭코 2015. 11. 19. 09:45

굼벵이 가을 인생 / 김명석


숲길에나 뜰에나 거리에나
한 발짝 발걸음에 마른 낙엽이 밟힘에
뼈마디 으스러지듯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찡하다
사분의사박자 반절이 떨어져 나간 남은 반절에
채울 것을 다 채워야 하는 가을 인생

봄볕에 냇가에 얼었던 얼음이 녹아
개구리가 세상을 만나 눈을 동글, 개굴개굴 읊고
봄 햇살에 아지랑이 아른아른함에
꽃봉오리가 얼굴을 펴고 갖은 색깔로 채색한다

여러 해 땅속에 묻혀 굼실거리던 굼벵이가 탈피하고
우화하여 한철에 나무에 들러붙어 노래한다
어두움에 구부러져 짧은 다리로 굼뜨던 굼벵이 인생이
제 세상 만난 듯 뱃심을 다해 목청껏 울어댄다

나무가 가을을 연주한다 가을의 음표가 공중에 너풀거린다
안단테 느리던 가락이 비바체 빠르게 율동한다
잔잔하던 파동이 줄기차게 물결친다
가을이 무르익는다

수확의 계절이다
땅속 어둠의 세월을 딛고
남은 반절을 오곡백과 만발하게 열매 맺고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가을이다

<제10회 기독교문예 신인작품상 수상에 즈음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