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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패션/ 김명석/ 문학리더스(2025년 봄호)

솔랭코 2025. 3. 16. 12:14

올드 패션

김명석

 

 

서울을 떠나온 지 십오 년이 되었다. 수원으로 올 때만 해도 사십 대 중년이었는데 이제는 육십 대 초로다.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서울이 멀게 느껴졌다. 특별한 때나 상경하지 발길이 잘 닿지 않다가 재작년부터 해마다 정기적으로 찾는 곳이 생겼다. 나이 먹다 보니 그전에는 겪지 못했던 병으로 인해 종로의 의원과 약국을 찾게 되었다. 예부터 종로는 금은방과 약국으로 유명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종로의 약국을 찾는다. 일단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값이 싸기 때문이다. 이 년 전에 내가 수원의 약국에서 한 달 치 약을 사는 데 삼만 원이 든 것에 비하면 종로의 약국에서는 이만 원이 좀 넘게 들 뿐으로 삼분의 일 가량이 싸다.

 

종로의 약국에 비하면 수원의 약국은 약값이 반값이나 비싼 셈이다. 처방전을 받는 데도 수원의 의원에서 한 달 치가 이만 오천 원이었는데 종로의 의원에서는 일 년 치가 이만 원이다. 차이가 나도 터무니없게 차이가 난다. 일 년 치로 따지면 수원 의원의 처방비가 종로 의원의 처방비보다 열다섯 배나 비싸다. 그러니 어찌 종로로 가지 않겠는가. 그래서 해마다 가을이 되면 종로에서 일 년 치 처방전을 받고 약을 산다.

 

단골 의원에서 처방전을 받고 단골 약국에서 약을 사는 게 목적이지만 또 다른 목적도 있다. 종로의 먹거리를 즐기는 재미다. 재작년과 작년은 광장시장의 맛집에서 즐겼지만 이번에는 인사동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서울에 살 때는 인사동에 자주 갔었는데 수원으로 이사한 뒤로는 언제 마지막으로 왕래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다. 추억이 생각나서였다. 종로5가에서 교통편을 이용하면 편하지만 좀 멀기는 해도 종로대로를 거닐며 가기로 했다.

 

종로5가에서 종로3가까지 가는 길에는 약국과 금은방이 즐비하다. 소싯적에 이곳 귀금속거리에 와서 선물할 돌반지를 산 기억이 났다. 금은방에서 예물 반지를 맞추는 청춘들을 보니 그 시절이 좋았다는 상념이 뇌리를 스쳤다. 그 시절은 귀금속 같은 시절이었는데 늙어갈수록 금은방은 고사하고 녹슬어 의원과 약국을 많이 찾는 신세다.

 

이십 년 만에 종로대로를 거닐다 보니 최신식 건물들이 높이뛰기 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당시에는 없던 번듯한 건물들이 우뚝 솟아 있었다. 촌놈이 상경해서 눈이 휘둥그레진 기분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 오죽하랴. 그동안에 내 모습은 새로워지지 못하고 세월이 느껴지게 변했다.

 

종로3가역을 지나니 탑골공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삼십 대 초반에 직장을 잃고 고뇌하던 시절에 자주 이 공원에 와서 씁쓸함과 무료함을 달래던 추억이 떠올랐다. 당시엔 많은 노인이 이곳저곳에서 바둑과 장기를 두곤 했다. 그 후엔 문화재 보호 목적으로 공원 내에서 바둑과 장기 두는 것을 금지해 노인들은 공원 후문 밖에서 명맥을 잇고 있다. 그 당시 청춘이었던 나도 어느새 초로가 되어 탑골공원을 찾았다.

 

문제는 너무 오랜만에 오다 보니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 어귀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눈을 씻고 봐도 당최 눈에 띄지 않았다. 재개발로 인해 사라졌는가 하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 헷갈려서 종각역을 지나쳐 피맛골 터까지 갔다. 마침 맛집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던 중에 최신식 건물에서 줄 서는 음식점을 만났다.

 

미슐랭 스타 맛집으로 몇십 명이 장사진을 쳤다. 마음이 동했으나 배가 너무 고파서 꼬리를 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시 맛집을 찾으러 다니다 보니 피맛골 안쪽에서 뜻밖의 풍경을 보았다. 피맛골이 사라진지 알았는데 오래된 건물들이 여전한 정겨운 풍경이었다. 현재의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돌아다니다 보니 노인들과 이발소가 많이 눈에 띄었다. 이발소들의 요금은 이발 육천 원, 염색 육천 원으로 균일했다. 이발소들에는 할아버지 한두 명씩 앉아 있었다. 내가 동네에서 이발과 염색을 하는 데 만 오천 원씩 드는 것에 비하면 반값도 안 된다. 이곳이 정말 서울의 중심지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피맛골은 고물가 시대에도 여전히 가격들이 쌌다. 여기저기서 노인들이 쌈짓돈으로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다.

 

계속 걷다 보니 청진동에 이르러 유명한 해장국집을 만났다. 젊었을 때 이 집에 가끔 와서 즐겼던 추억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오래된 건물이었는데 해장국을 먹다 보면 벽이고 식탁이고 바퀴벌레가 기어다녔다. 그래도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맛있게 먹었다. 삼십 년이 지났지만 오래된 추억이 생생하다. 계속 헤매다 보니 탑골공원까지 되돌아갔다. 그 위편에서 낙원악기상가를 만났다. 감회가 새로웠다. 오십 년 전 추억이 떠올랐다. 칠십 년 대 초중반에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낙원상가 이 층에서 교복을 맞추던 일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당시에 교복은 스마트와 엘리트가 쌍벽을 이루었는데 어렴풋이 스마트 교복을 입은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불우한 환경 속에도 교복을 입으니 기분이 새로웠는데 지금은 백발의 나이를 입고 있다. 낙원악기상가 앞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슐랭 스타 맛집에서는 비싼 돈을 주고 먹으려 몇십 명이 줄섰지만 이곳에서는 노인들이 무료 급식을 받으려 몇백 명이 줄 서 있었다.

 

다시 종각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가 드디어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를 찾았다. 감격스러웠다. 아까 지나치던 길인데 그걸 몰랐던 것이다.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배고픈 것도 잊었다. 한정식 골목으로 들어가 맛집을 찾았다. 이곳은 작은외삼촌이 한정식집을 운영하던 곳인데 어렸을 적 설날 때마다 세배하러 와서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먹었었다. 과식해서 배탈이 난 적도 있었다. 외삼촌은 고인이 되고 그 집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손님들로 꽉 찬 맛집을 찾았다. 힘들게 찾으며 다닌 만큼 만족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골동품점과 갤러리를 구경했다. 골동품은 희귀하고 오래될수록 가치가 높아지나 천만 노인은 나이 먹을수록 가치가 없어진다. 갤러리에서는 누드화 전시회를 관람했다. 노인은 나이를 다 먹으면 맨몸이 된다.

헤매다 보니 피맛골을 거의 누볐는데 이곳에서의 어렸을 때부터의 추억을 소환한 셈이다. 피맛골이 거대한 노인정으로 보인다. 현대 첨단 문명 시대에 피맛골도 그렇고 노인들도 그렇고 세월을 입은 올드 패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