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 가을곡
1
‘가을 단풍 가야 할 시기 아닌가요?’
메시지가 인사치레인지? 11월 초면 단풍 구경하기에 늦은 시기인데,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말이었다. 미래를 암시하고 있었다.
‘예. 단풍놀이해야 할 시기죠.’
‘아니나 다를까?’는 아니다. 생각지 않고 있었는데 이틀 뒤 토요일 아침 댓바람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인이 같이 단풍 구경을 가고 싶다고 해서, 유명산에 가자는 것이다. 밥 먹듯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고,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유명산 단풍은 늦은 것 아닌가? 했더니 아직은 괜찮다는 것이다. 단풍이 무엇이 중요한가. 함께 시간을 나누는 동행이 중요하지. 고맙게도 한 시간 뒤에 픽업하러 오겠단다.
그녀도 단풍 치장을 해야 했겠기에 한 시간 더 지나서 근처에 왔다고 연락이 왔다. 계획했던 유명산이 아니고 여수에 가겠다고 한다. 으레 나는 어디든 새벽예배를 할 수 있으면 좋다고 한다.
그녀는 유럽풍의 모자와 스카프로 얼굴을 치장하고 두툼한 하얀 점퍼를 입었다. “꼬망딸레부!”에 그녀는 “하이!”로 답한다. 사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독일인 비슷하다.
차가 포도를 달리며 친구의 부인이 삶아 온 달걀로 우리는 여행의 시작을 고했다. 예전에 기차 여행할 때 삶은 달걀만한 것이 없었다. 포도를 달리던 차가 어느덧 평택을 지나 천안으로 향하는 중에, 때가 지났다고 생각했었는데 뜻밖의 중부 내륙 지방의 찬란한 단풍에 노래가 절로 나온다. ‘가을길’이다.
맑은 하늘은 맑은 마음
맑은 마음 하늘에 담아
홍실 황실을 씨실 날실로 매듭지어 단풍산을 만들고
안개 흐릿한 산마루 골짜기 등성이로 이어 마음을 잇고
실개천가 갈대도
이삭 벤 가을걷이 논밭도
노랗게 산야에 화음 맞추었다
뫼 높을수록 빨리 물들고 빨리 지고
낮을수록 오래고 넓으니
우리네 인생도……
단풍은 져도 훗날을 기약하나
백발은 지면 그만
자연과 같으면
인생은 그지없을 것이라
단풍에 취해 논산천안고속도로를 타고 정안휴게소로 향하는 길에 그녀가 나를 축하한다.
“상 받으셨다면서요?”
얼마 전에 나는 모 문학지 시 부문에서 신인상에 당선되었다. 친구 부부는 오랫동안 나의 책 출판에 물심양면으로 은혜를 베푼 후원자들이다. 내가 그들에게 은혜를 갚는 길은 문학상을 받든지 훌륭한 책을 내는 것이었다. 그들을 부끄럽게 해서는 안 되기에. 나의 글은 곧 그들의 글이요, 나의 책은 곧 그들의 책이다. 그들과 나는 씨실과 날실로 매듭지어진 인생 동행이다.
“예. 특허 천 개에 비하면 새 발의 피죠.”
현학적으로는 조족지혈이다. 친구는 천 개에 육박하는 특허를 소유한 한국의 에디슨이다. 친구는 “교보……”로 화답한다. 나는 잽싸게 친구 부인에게 교보문고 광화문점 평대에 내 소설이 진열된 것을 찍은 사진을 보여 준다.
“이번엔 좀 달라.”
친구의 말이다.
관심은 인격이고 사랑인 것 같다.
차량이 밀리며 남북으로 뻗은 단풍을 세세히 보니 문득 새옹지마, 전화위복이 마음을 깊이 파고든다. 자연이 순리에 따르듯 인생도 순리에 따르면 쉽고 편하리라. ‘순리에 따라’ 시상이 요동친다.
어제는 북 오늘은 남
자연은 순리에 따라
어제는 북에서 오늘은 남에서
발걸음도 차량도 곡조에 맞추어
어제는 북으로 오늘은 남으로
남북이 하나 되어 동서로 잇고
어제는 식도를 넘어 위장을 지나
오늘은 꽁무니로 줄달음한다
대장 소장 직장으로
주변은 온통 주름진 단풍벽
막혔다가 뚫리고
막혔다가 뚫리고
순리에 따라
단풍을 눈으로 본다
마음으로 느낀다
코로 맡는다
마음으로 느낀다
순리에 따라
2
정오에 정안휴게소에 도착했다. 여행의 즐거움은 식도락이다. 수십 가지 중에 낙지철판구이가 나의 구미를 당긴다. 선택하고 보니 가장 비싼 것이다. 친구는 고등어구이, 부인은 모차렐라 돈가스. 그녀의 고상한 선택에 나는 흠칫 놀란다. 그녀는 요리 선택도 유럽풍이다. 그녀는 씩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요리는 휴게소 음식답지 않게 맛깔나다. 친구가 이곳 휴게소 음식의 실함을 칭찬한다. 그는 사업의 귀재답게 고객을 실하게 만족시켜야만 장기화할 수 있다는 게 경영철학인 것 같다.
그는 한창 식사 중에 부인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3년 전에 부인과 함께 LA 공항에 갔었는데 한 외국인이 부인 곁을 서성거리더란다. 경계를 하는데, 사연인즉 “Beautiful!”을 연발하며 미모에 반해서였더란다. 우리는 함께 박수를 치며 자축을 했다.
나도 그녀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작년에 그녀가 모 기념식에 참석한 단체 사진을 어떤 처자에게 보여 주니, 그 처자는 그녀를 보고 단박에 “외국 여자예요?”라고 물었다.
오밀조밀한 눈 코 잎
눈은 초롱초롱 깊어 인생을 담고 세상을 담았다
갸름한 얼굴에 오뚝한 콧날은
아직 오르지 못한 산마루
허튼소리 없는 야무진 입술은
오늘의 그녀
그녀는 컴퓨터
정교하게
어려운 코드를 분석하고
숫자를 짜 맞추는
살아 있는 컴퓨터
그녀는 패션모델
동대문 평범한 옷도 그녀가 입으면 명품
베풀고 나누는 그녀의 마음도
명품
그녀의 마음은 태평양
배포는 역사의 어느 여중호걸 못지않은 여장부
시련도 큰마음으로 보듬은
그녀는 사랑 자체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그녀는 사랑꾼
오늘도 익산의 달은 만월이다
‘익산의 달’이라 시명 한다.
뷰티풀에 밥맛까지 달콤하다. 맛있게 식사를 하는 중에 나는 실없이 식사 전에 화장실에서 겪었던 냄새나는 이야기를 했다.
“소변을 보는데 벽에 명언이 보이더라고. ‘장애는 단지 불편할 뿐, 불행한 것이 아니다’ 헬렌 켈러의 말이더라고.”
그 이야기를 하고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자네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다’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그는 즉각 대답했다.
“나는 대단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아, 역시 자네는 생각이 대단하군. 내가 한 말이라고 하면 남들은 콧방귀를 뀌었을 텐데. 사실은 내 우측 소변대에 있던 헨리 포드의 말이야.”
친구는 사업가로서 헨리 포드의 말을 이미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수긍은 또한 그의 겸손이다.
셰익스피어가 말한 좌측 소변대의 것도 두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었지만 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의 귀는 아무리 낮은 소리라도 다 알아듣는다.’
메뉴를 선택하기 전에 메뉴판 밑의 서적 가판대에 있는 책들을 보고 그녀는 내게 물었었다. 내 책은 왜 없냐고. 그녀의 관심 어린 사랑의 말을 나는 알아들었었다.
식사를 마치고 친구는 편의점에서 생율 한 통을 샀다. 나는 옛날 기차 여행 때 삶은 달걀과 함께 쌍벽을 이루었던 귤이 먹고 싶어 편의점에 다시 가서 사 가지고 오겠다고 했더니, 친구는 작가는 돈 쓰는 것이 아니라며 기어코 내 손에 지폐 한 장을 쥐여 준다.
계산대에서 귤 값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귤 일곱 개 들이 한 꾸러미가 육천 원! 쪼끄만 귤 하나가 천 원 꼴이다. 생율 한 통은 얼마나 비싸겠는가.
공주로 향하며 공주 생율을 씹는 맛은 기가 막혔다. 이에서 생율이 툭 터지며 입 안에 단물이 꿀같이 고였다. 평생 먹어 본 날밤 중 최고다. 비싼 값어치를 했다. 밤 맛에 취해 ‘공주 생율의 철학’이 절로 나온다.
달콤하고 상큼한 맛
껍질은 굵고 딱딱해도
윤기가 흐르는 것이 부잣집 자제 꼴
뽀얀 속살은 어린 아기의 젖살
싱싱함이 입에서 툭 터지며
쌓인 피곤이 가신다
겉으론 강직하고
속으론 부드럽고 달콤한
존재로
생율과 귤을 함께 즐기며 논산으로 길을 잇는 중에 흥이 더해 또‘가을길’이 떠올랐다. ‘가을길 Ⅱ’다.
남북을 가르는 포도를
고등어와 낙지와 모차렐라 돈가스를 에너지 삼아
줄기차게 달린다
남쪽 끝까지
왜 힘들게 끝까지 달리는가
거기에 그곳이 있기에
목표가 그곳이기에
가야 한다는 의지 목적의식 사명감이
마음을 당연하게 하고 굳게 한다
그곳에 순천이 있고 여수가 있다
그곳까지 가야 하기에 끝까지 달린다
목표를 향해
논산을 지나 멀리 익산을 두고 완주로 접어들었다. 익산은 그녀의 고향이다. 익산에서 ‘익산의 달’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 익산은 또한 내가 어렸을 적 뛰놀던 외갓집이 있는 추억이 서린 곳이다.
순천완주고속도로를 타고 상관에 이르러 입이 딱 벌어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줄기의 단풍 물결에 입에서 감탄사가 폭죽 터지듯이 연신 터져 나왔다. 단풍에 대한 찬사들이 많지만 지금 보는 단풍은 그야말로 비단 물결이다. 비단이 굽이치는 실크로드를 달리는 기분이다. 그녀는 비단 물결에 흥에 겨워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었다. 나도 앗싸! 추임새를 넣으며 어깨를 흔들어 장단을 맞추었다. 비단, 단풍 때문만이겠는가. 동행하며 즐기니 흥이 몇 배로 솟구치는 것이리라. 인생길도 이토록 더불어 동행하면 더욱 즐겁고 흥에 겨우리라.
3
흥에 취해 달리다 보니 차는 어느덧 네 시간 만에 벗의 부친이 살고 계시는 순천 괴목 집에 도착했다. 춘부장은 대문까지 나와 반갑게 맞아 주셨다. 오랜만에 뵙는 춘부장은 올해 춘추가 여든 여섯인데 정정하시다. 춘부장을 따라 들어가니 안뜰에 노란 감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감도 단풍철에 때맞추어 진하게 물들었다.
감이 주렁주렁
노랗게 곱게도 맛나게 물들었다
홍시로 익은 감은
이가 없어도 잇몸으로도 살살 녹는
아이스크림 같은 물렁살
인생도 단감에서 홍시로
괴목 집의 풍요로움이 감으로 열렸다
‘괴목 집 단감’을 되씹으며 우리는 아버님을 모시고 두 번째 점심을 먹으러 구례로 향했다. 두 시가 넘었지만 아버님께서는 맏아들 내외를 기다리시느라 아직 점심을 안 드셨기 때문이다. 부정이다.
구례5일장 주차장에 도착해 가마솥소머리국밥집으로 향하는 중에 친구가 주인장에게 선물할 책이 필요하다고 해서 나는 흔쾌히 발걸음을 주차장으로 되돌렸다. 책을 가지고 국밥집에 도착하니 가마솥의 훈훈한 정감이 진하다. 괴목 집에 오면 으레 들르는 코스다. 음식점은 맛으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정 때문에도 온다. 안으로 들어서니 아자씨는 안 보이고 아줌씨만 보인다. 반갑게 인사했는데, 알아보신 걸까?
식탁에 앉으니 내 것도 알아서 주문이 되어 있어서 곧 음식이 놓였다. 우리는 이미 점심을 먹었던 터라 춘부장께서 제일 맛있게 드신다. 그 연세에 잘 드시는 것을 보니 엄청 건강하신 거다. 나는 보통 노인들의 건강은 먹는 것으로 판가름한다.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 음식을 거의 못 드셨다. 소화가 안 되기 때문이다. 몸은 말라가는데 못 드시니 더욱 야위어 갔다. 요새는 어머니도 잘 못 드시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는 포만감에 못 먹을 줄 알았더니 소머리국밥이 맛있어서 쑥쑥 들어간다. 게다가 친구의 것은 ‘특’이다. 부인의 것은 순댓국. 그녀는 오늘은 먹을 수 있을 만큼 먹겠다고 하면서도, 잡채순대를 세 사람에게 한 점씩 놓아 준다. 친구는 부친께 자신의 것을 덜어 드린다. 가마솥의 훈훈한 정감이다.
식사를 하면서 나는 최근에 발간한 소설책과 작년 말에 발간한 시집을 주인장 아줌씨에게 사인해서 선물로 드렸다. 시집에는 이 음식점에 대한 시도 수록되어 있다. 아줌씨는 시집을 금방 알아본다.
식사를 마치자 친구는 나에게 이 음식점에 대한 시를 아줌씨께 낭송해 드리라고 주문한다. 다른 손님들이 있는 데서 나는 난처했지만 친구의 바람에 생땀을 흘리며 크게 낭송했다. 아줌씨는 낭송하는 동안 다소곳하게 숙연히 귀를 기울였다. 낭송을 마치고 음식점을 나올 때 아줌씨는 소설 제목이 너무 좋다고 감탄했다. 가마솥이 이런 맛 아니겠는가.
키를 돌려 피아골단풍축제장으로 향하는 길에 나는 밥심으로 시집에 있는 춘부장과 친구에 대한 시도 소리 높여 낭송해 주었다. 시를 낭송하는 중에 친구가 순천의 별, 하고 주문하기에 나는 기억을 되살려 그 시를 완벽하게 암송해 주었다. 11년 전에 친구가 공학박사 학위를 받을 때 헌시한 축시다. 그 시를 읊고 나니 친구는 오히려 서운해한다. 부인에 대한 시는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은 곧 나에게 특명이었다. 나는 부인의 시는 너무 어려워서, 하고 변명하고서, 부인의 시는 ‘익산이 달’인데, 그 용어가 들어간 시가 부인의 시라고 얼버무리고 그 시를 읊어 주었다. 임기응변이었지만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친구는 그렇지, 하고 박자를 맞추고 부인은 씩 웃어 넘겼지만 씁쓰레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시 낭송이 한 번씩 끝날 때마다 와~ 함성을 외치며 박수로 화답했다. 이런 사연으로 탄생한 시가 앞서 삽입한 그녀의 시 ‘익산의 달’이다.
맑고 푸른 섬진강도 물결로 우리와 화음을 맞추었다. 나는 섬진강에게도 ‘청청 섬진강’ 즉흥시로 화답했다.
굽이굽이 맑은 산소
도심에 찌든 세포를
씻기고 재생시키네
청정 섬진강 물
혈관을 타고 흘러
몸을 정연케 하네
비탈의 녹차밭 향
코로 스미어
오감을 깨우네
산도 물결치고
강도 물결치네
가을의 섬진강은 주변의 단풍산과 녹차밭의 빛깔과 어우러져 거센 숨결이 일렁인다.
지리산 피아골을 굽이굽이 오르는 내내 온통 뒤덮인 단풍 물결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휘감았다. 오색 화려한 단풍을 더 이상 어떻게 형용할 것인가. 그저 입만 벌리고 있으면 된다. 우리는 다시 어깨춤으로 표현했다. 춘부장도 손가락으로 차 문을 두드리며 추임새를 넣으셨다. 춘부장의 그러한 모습은 처음 본다. 맏아들 내외와 함께하니 내심 즐거우신 모양이다. 모두가 단풍으로 마음이 하나 되었다.
피아골을 내려와 쌍계사 근처에서 지리산 맑은 공기로 심신을 가다듬으며 초연히 산책을 했다. 나무의 숨결과 풀내음, 계곡 맑은 물이 몸으로 마음으로 오롯이 스며든다. 산보를 하면서 친구 부인이 나에게 꿀팁을 얘기한다.
“생강차를 드셔 보세요. 속을 따뜻하게 하고 원기를 늘려서 아주 좋아요. 부추도 살짝 데쳐서 드셔 보세요. 몸을 해독하고 혈액 순환에 아주 좋아요. 소고기를 샤브샤브로 곁들여 보세요. 기가 막혀요.”
나한테 딱 필요한 처방이었다.
“이거 두 가지 먹고 몸이 안 좋아졌다고 하면 나한테 오라고 해요.”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얼굴도 혈색도 무척 좋아 보이고 마음도 즐거워 보인다. 나는 그녀의 우스개에 씩 웃음을 지으며 그래야겠다고 응답했다.
쌍계사 입구에 이르러 매표소 앞에서 친구는 내 눈치를 한 번 보고 부인에게 그냥 내려가자며 고갯짓했다.
쌍계사를 뒤로하고 우리는 화개천을 따라 화개천 물이 흘러드는 섬진강변에 위치한 화개장터에 이르렀다. 구례와 하동을 잇는 화개장터는 언제 와도 녹차향과 시골향이 진하게 풍기며 정감이 든다. 세월이 흐를수록 동서의 지역감정은 화개장터의 어울림과 같이 많이 누그러진 것 같다. 인생도 나이를 먹을수록 그러해지는 것 아닌가 싶다. 아니, 죽을 때까지 그러한 감정을 갖고 가면 무엇 하겠는가? 죽기 전에 그래야 할 것이다. 죽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앙금을 푸는 게 좋을 것이다.
상점마다 특산물이 가득하다. 대봉감과 밤, 자연산 송이버섯도 있다. 친구는 송이버섯 한 조각을 참기름에 찍어 시식을 하고 한마디 한다.
“그냥 참기름 맛으로 혹하는 거지 뭐.”
상점들에는 한결같이 특산물을 비닐로 포장한 것들이 가득한데, 어느 한 군데에서 모두 받은 꼴이었다. 할머니들도 길가에 좌판을 쭉 깔아 놓았다. 친구는 감말랭이 한 봉지를 샀다. 한입 먹어 보니 쫄깃하고 달콤했다. 인생도 계속 달콤하고 쫄깃하면 얼마나 좋으랴.
열심히 구경하다 보면 한 가지 놓치는 게 있다. 춘부장이 가끔 보이지 않는다. 춘부장은 멀찌감치 우리가 지나던 자리에서 물끄러미 서 계신다. 무엇을 생각하고 계시는가? 간혹 고개를 좌우로 살며시 돌리신다. 아마도 우리를 찾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춘부장과 함께 다닐 때면 으레 신경을 쓴다. 친구도 가다 말고 서서 기다린다.
오늘의 춘부장은 일이 년 전의 모습과는 사뭇 차이가 났다. 기력이 다소 떨어진 것 같다. 하긴 팔십육 세 노인이 아무리 건재하다 해도 어떻게 젊은 사람들에게 발맞출 수 있겠는가. 아까 가마솥집에서 춘부장은 국밥 국물을 많이 남기셨다. 예전에는 항상 국물을 한 방울도 안 남기고 싹 비웠었다.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예리한 맏며느리는 차를 타고 오면서 그러한 것을 감지해 몸이 어디 안 좋으시냐고 거듭 질문했었다. 그저 괜찮다고 하신다. 맏아들이 계속 사다 주는 좋은 옷들은 장롱에 재워 두고 오늘도 허름하고 얇은 작업복 차림으로 나와서 안 춥다고 하시는 분이다. 아마도 몸이 좀 썰렁해서 그러신지도 모른다. 공기 좋은 시골에서 사셔서 건강하신 듯해도 팔십육 세면 아무리 그래도 기력이 많이 딸릴 나이다.
화개장터를 떠나 남도대교를 지나며 섬진강을 가르고 광양으로 향했다. 섬진강을 따라 달리며 금빛 갈대밭과 모래밭에 넋을 놓고 있을 때 친구는 두루미 봐라, 하고 소리를 냈다. 나는 순간적으로 구경하고 갑시다, 하고 외쳤다. 친구는 즉시 도로변 안전한 곳에 차를 세웠다.
섬진강에서 두루미들이 노는 모습을 보기는 생애 처음이다. 두루미들이 섬진강에서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보니 꿈결인 듯 환상적이었다. 새하얗고 고혹한 자태의 두루미와 섬진강이 어울려 밝고 아름다웠다. 살아가면서 이 모습을 한 번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두루미들은 마냥 곰작 않고 서 있는데도 우아하다. 가끔 날개를 흔들어 살아 있음을 알리기도 했다. 친구 부인이 동영상을 촬영하면서 움직이라고 소리치자 두루미들은 알아들었는지 여러 마리가 날개를 저으며 화답했다. 나도 두루미들을 따라 양팔과 양발을 마구 저으며 함께 두루미 춤을 추었다. 나는 잔망스럽게 막춤을 추다가 친구 카메라에 찍혔다. 나도 가족사진을 여러 장 찍어 주며 화답했다. 두루미 한 마리가 카메라를 의식했는지 몇십 미터를 물 위를 달음박질하는 묘기를 부렸다. 동계올림픽에서 은빛 연기를 펼치는 모습이었다. 무대 위에서 발레리나가 화려하게 춤추는 자태였다. 섬진강과 두루미가 어울린 장관은 이번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4
두루미들과 실컷 놀고 나서 섬진강을 벗어나 광양으로 향하는 길에 어둠이 짙게 깔렸다. 그때 묵묵하게 계시던 춘부장이 나에게 보라는 듯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산머리에 커다란 붉은 만월이 낮게 떠 있었다. 사실 나는 아까 오면서 그 달을 봤었는데 왠지 그렇게 낮게 떠 있는 커다란 붉은 만월을 보고 달이 아닐 거라고 여겼었다. 다시 보니 현실은 달이었다. 그렇게 커다란 붉은 만월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자연은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장관을 파노라마같이 펼쳤다. 현실이 꿈같았다. 달도 단풍철에 색조를 맞추어 저렇게 붉게 물들다니. 만삭이 된 달은 이제 막 무언가를 해산하려는 기세였다. 광양과 여수를 잇는 운치 있게 조명된 이순신대교를 건너면서 바다 위에 떠 있는 ‘붉은 만월’에 빠져들었다.
붉은 만월은 산 위에도 뜨고
바다 위에도 뜬다
달은 평등하다
자연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우리 사회는
달같이
자연같이 평등한가
부유하든 가난하든
모두가 붉은 만월을 즐길 수 있으니
자연은 평등하다
커다란 만월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익산의 달’이 느껴졌다. 그녀는 만월이다. 마음이 넓고 사랑이 큰 사람은 만월인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눈썹달, 언월……. 나는 무슨 달일까. 만월은 많은 사랑과 베풂과 나눔을 해산할 것이다.
만월에 심취해 있던 중 묘도대교를 건너면서 불현 듯 눈에 들어온 휘황찬란한 야경에 눈이 번쩍 뜨였다.
“앗! 아니 저게 뭐야?”
처음에는 멀리 아파트 단지의 야경인가 싶었다. 상하이의 아파트군의 백만 불짜리 야경, 홍콩의 마천루 야경이 연상되었다.
“저건 여수산업단지 공장들 탑에서 뿜어내는 불빛들이야.”
그는 박학다식하다.
“응? 와~ 대단하네.”
60년대 말부터 한국 경제를 이끌어 온 이 산업단지의 불빛들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찬란한 야경을 만들어 내다니. 친구는 이 길은 필수 코스라고 한다. 그는 일부러 차를 이쪽으로 몰고 왔던 것이다. 그의 배려이다. 아마도 내가 이 야경을 눈치채나 못 채나 재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나는 마치 외국에서 한국에 관광 온 기분이었다. 끝없이 광대한 여수산업단지의 신비한 야경에 나는 넋을 놓고 연신 감탄사를 토했다. 이걸 아파트 단지 야경이라고 착각했었다니. 달을 보고도 달이 아니라고 여겼으니. 나는 이제 소설과 현실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현실도 달리 보였다. 단순히 백만 불짜리 산업단지의 찬란한 야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고 아쉽다. 심상이 머릿속에서 잡힐 듯 말 듯 뱅글뱅글 맴돈다.
‘아, 그렇다! 이것은 은하수다!’
하나하나의 불빛들은 하나하나의 별들. 그것들은 군집을 이루어 은하수를 이루었다. 그것들이 은하수로 보이니 더욱 신비하고 찬란했다. 여수산업단지는 정말로 대한민국의 은하수다. 그곳에서 24시간 피어오르는 연기들은 오로라로 보였다. 그 오로라는 대한민국의 기적을 이루었다. 오로라는 플라스마가 아니던가. 플라스마는 친구 부부의 주특기가 아니던가. 이제는 플라스마가 대한민국을 밝히고 있다. 은하수와 오로라가 어울린 야경은 환상적이고 극치였다. 이 야경도 이번 여행의 백미다.
야경의 여운이 눈에서 섬광으로 번뜩이면서 우리는 드디어 여수신항에 도착했다. 공영주차장에서 음식점으로 향하면서 친구는 얇은 옷을 입은 부친에게 따뜻한 패딩 점퍼를 입혀 드렸다. 사실 친구는 처음부터 입으시라고 했었지만 부친은 마다했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움츠리고 계셨다. 그래서 더 힘들게 보였는지 모른다. 춘부장은 그제야 온기에 어깨를 펴시고 환히 웃으셨다. 나에게도 입어 보라고 해서 마다했지만 친구는 기어코 내게도 옷을 입혔다. 사실은 저녁이 되어 조금 쌀쌀했었다. 그와 그의 부인의 배려는 누구도 따라갈 자가 없다.
이윽고 만찬을 즐길 오동도해양식당에 도착했다. 이곳은 친구의 초중교 여동창이 운영하는 음식점이다. 여동창과 인사를 나누고 친구는 또 아차! 책, 했다. 나는 이번에도 선뜻 키를 받아 다시 공영주차장으로 향했다.
공영주차장에서 책을 가지고 돌아오니 그새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간장게장, 양념게장, 가자미구이, 게튀김, 갓김치, 각종 나물들. 점심을 두 끼 먹었지만 입 안에서 군침이 돌았다. 친구는 식사를 하기 전에 여동창에게 사인을 해서 드리라고 이름을 알려 주었다. 소설책에 사인을 하고 나서 시집에도 사인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친구 여동창이 와서 지켜보고 있다가 내 이름이 아닌데요, 라고 말했다. 아뿔싸!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니 다른 여자 이름을 적어 놓았다. 이름 석 자 중 ‘신’자와 ‘자’자로 인해 무심코 그 두 글자가 들어간 다른 여자 이름을 적어 놓았다. 이런 창피스러운 실수를 범하다니.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름이다. 그런데 왜 그 이름이 불쑥 튀어나왔을까. 인간의 잠재의식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나는 이름을 정정하고 사죄하면서 여동창께 선물하였다. 친구 여동창은 오히려 괜찮다고 하며 거듭 사례했다. 나로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해프닝을 애피타이저로 삼아 본격적으로 식사를 했다. 모두가 간장게장에 푹 빠졌다. 식사를 하면서 친구 부인은 시부에게 게딱지에 밥을 비벼 드렸다. 사실 그녀는 시부를 ‘아버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버지’라고 부른다. 친부같이 여긴다는 뜻이다. 춘부장이 원기를 회복해 한창 맛있게 식사를 하는 중에 친구는 부친에게 별도로 장어탕을 시켜 드렸다. 아버지에 대한 맏아들과 맏며느리의 사랑이 지극하다.
정이 넘치는 만찬을 즐긴 후 우리는 거북선대교를 건너 마침내 계획했던 여수에서의 하룻밤을 묵을 돌산도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뿔싸! 관광 시즌에 토요일인지라 펜션이고 모텔이고 빈방이 없었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허탈하기도 했지만 나는 새삼 놀랐다. 지역 경제가 이렇게 살아 있다니 한편으로는 기뻐해야 할 일이다. 두 군데를 알아보고 친구는 상대도 안 하는데, 하며 집에 가자고 했다. 그렇게 여수에서의 하룻밤 꿈은 허무하게 끝났다. 가을 단풍여행은 그렇게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것도 하나의 의미 깊은 추억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동안 장관의 파노라마를 계속 즐기면서 이곳 순천, 여수 끝까지 오지 않았던가. 나는 마치 열두 시간의 여행이 며칠 동안의 긴 여행으로 느껴졌다. 다만 식사할 때만 빼놓고 계속 운전한 친구가 걱정될 뿐이다. 그동안에도 친구 부인은 몇 번을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부인을 애지중지해 핸들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운전 중에도 계속 서로 손을 잡곤 했다. 아름다운 정경이다. 사랑앵무가 봐도 질투했을 것이다.
돌산도에 그렇게 하룻밤을 남기고 괴목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친구는 고향집에서도 안 묵고 바로 가겠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대략 열여섯 시간 동안 쉴 틈 없이 800km를 운전하는 셈이다. 보통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대단한 집념과 정신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친구가 초인으로 느껴졌다. 그는 그 능력으로 부인과 함께 지금을 이루어 낸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힘들게 운전하면서도 그는 단 한 번도 불평도 피곤한 기색도 나타내지 않았다. 다만 몇 번 묵묵히 뒷목을 잡을 뿐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두어 번 숙연하게 그의 목덜미와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그에게서 어렵다, 힘들다, 피곤하다, 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이제 친구와 그의 부인은 진짜 만월이었다. 그야말로 이제는 진정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차는 자정을 넘어 동녘을 향해 어둠 속을 치달았다. 가을 여행은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우리는 아직 ‘가을’에 있다. 아직도 ‘미완성 가을곡’을 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