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미로
김명석
볕 들 날 없는 꼬불꼬불한 미로 안에 어린 새들에게 깃이 없다
꼬불꼬불한 미로에서 빛은 청맹과니가 된다
하얀빛이 막다른 골목에 부딪혀 피멍이 들고 검은빛이 된다
미로 안에는 KF94 마스크 먼지 쌓인 책걸상 낙서투성이 공책 검은 비닐봉지 라면봉지 배고픈 아동급식카드가 있다
뻐꾸기 어미 새는?
허기져서 좁아진 미로에서
어둠과 창자가 붙어 배곯는 소리가 난다
어린 새들이 꼬불꼬불한 미로를 양은 냄비에 넣는 틈에 어둠이
도시가스 관을 통해 침입한 코로나 블루에 불을 붙여
블루 불길이 치솟아 미로가 검은 수프에 휩싸인다
날개 없는 어린 새들이 종종걸음으로
절벽의 창문 없는 검은 창문을 통해 이소를 시도하기에는
미로가 검다
라면봉지 안에서 KF94 마스크 대신 산소마스크를 쓰고
라면처럼 꼬불꼬불 누워 있는
검은 어린 형제 새
화가 일휴
김명석 1961년 서울 출생했다. 기독교문예 단편소설과 시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한국기독교작가협회와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시집 '동행길' '생의 언저리에서' 장편소설 '밀레니엄 그 후' '후회 없이 돌이키지 않게' '반달', 단편소설집 '호루라기', 에세이 '아버지의 바퀴가 이어준 행복', 기행서 '신삼국기행'을 출간했다.
출처 : 일간경기(http://www.1g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