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눈
설날이라고 눈이 내린다
새하얀 달빛으로 빚은 설눈이
묵은해를 하얗게 덮어 버리고
새해를 순수하게 장식한다
달력을 넘기니 새 달이 뜨고
새해가 백지처럼 비어 있다
눈밭에 첫걸음으로
신발의 먼지를 씻어 내고
발자국을 새겨 나가야 한다
제아무리 뛰어난 화가나 시인이라도
자연의 솜씨에 비할 수 없다마는
눈이 녹아 바닥이 드러나기 전에
눈을 뭉쳐 눈사람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막힘이 없어 눈이 내리니
비운 마음 한복판에 서서
눈꽃을 피워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