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손길 발길 닿은 고샅고샅
남루한 담벼락이 웃고 울고 있다
용마루 낮은 허름한 여인숙
객이 갈 곳 없어 시간에 묻혀 있다
뒤주에 웅크린 삶이
한 되의 목숨을 연명하려 허우적댄다
왕의 용포 자락 스친 고샅에
그리움 짙게 배어 있다
흔적만 남은 빈터에
꽃이 바람에 소리 없이 쓸쓸하게 하느작거린다
화려한 길 끝에 외로운 병실
총천연색 그림 뒤 먹빛 자화상 서리어 있다
흘러 버린 시간에
옛 모습 그릴 수 없고
붓 가는 대로 따라가 찾은 고택엔
문빗장 걸려 있고 허공에 시어만 흩날리고 있다
그리움이 이끈 웅덩이엔
정기 공연을 마친 오리들 간데없고
붕어 메기가 갇힌 삶에 시간 속을 유영하고
굴뚝나비 홀로 개망초에 앉아 꼼짝 않고 세월을 보내고 있다
지나 버린 세월을 뒤로하고 남은 공간을 채우려
흐르는 냇물 따라 걸음을 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