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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보금자리/ 김명석/ 『‘홑’과 ‘겹’ 사이』/ 한국수필가협회

솔랭코 2024. 12. 18. 12:29

하나님의 은혜로 2024년 한국수필작가회 대표작 선집인 『‘홑’과 ‘겹’ 사이』에 수필 '어머니의 보금자리'가 수록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보금자리

 

 

허리는 그야말로 삶의 중추다. 허리가 아프면 그것만큼 힘들고 불편한 일도 없다. 허리가 튼튼해야 편안하고 즐거움이 커질 수 있다.

새벽같이 작은형에게서 어머니가 화장실 앞에서 쓰러지셨다는 연락이 왔다. 놀라서 어머니에게 전화했더니 화장실에 들어가려다가 허리가 너무 아파서 주저앉았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허리가 안 좋아서 삼십여 년 전에 디스크 수술을 받은 바 있고 몇 년 전에는 허리에 금이 가서 시술을 받은 바 있다. 허리는 어머니를 수십 년 동안 괴롭혀 왔다. 아픈 허리는 어머니의 삶의 질을 떨어트렸다.

작은형이 당직을 서서 늦으니 나에게 어머니를 입원시키라고 부탁해서 어머니 댁에 가자 어머니는 잠자리에 누워 계시다가 힘들게 일어나 겉옷을 입으셨다. 어머니는 이미 입원할 결심으로 보따리를 싸 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몇 년 전에 모 전문 병원에서 시술받은 것이 문제였는가 싶어 이번에는 모 대학 병원으로 모셔 제대로 수술을 받으시게 하고자 했다. 어머니는 거동하기도 어려워서 119에 전화했더니 119 구급대에서는 멀리 모 대학 병원까지는 못 가고 가까운 병원밖에 안 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작은형이 차를 가지고 오기를 기다리다가 밤늦게야 모 대학 병원 응급실로 모실 수 있었다. 응급실에서 골반 양쪽에 금이 갔다고 진단해 입원해서 수술을 받으시게 하려 했더니 모 대학 병원에서는 죽을병이 아니면 입원이 안 된다고 했다. 그 대신에 응급실에서는 모 전문 병원을 소개해 주었다. 몇 년 전에 시술받은 그 병원인 것으로 생각해 께름칙했지만 일단 그 병원에서 보낸 구급차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막상 그 병원에 도착하니 이름이 유사한 다른 전문 병원이었다. 어떻게 할까 갈등하다가 자정이 넘은 시각에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 하셔서 할 수 없이 입원 수속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수술 결과는 고민했던 바와는 달리 잘됐다고 했는데 어머니는 허리가 더 아프다고 힘들어 하셨다. 의아하게 여기며 몇 년 전에 받은 시술이 정말로 문제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오해였다. 디스크 수술을 받을 때 댔던 쇠붙이가 삼십 년이 넘다 보니 녹슬어서 그렇다고 했다. 담당 의사는 골반 수술을 할 때 그곳의 녹을 긁어냈다고 했다. 그곳도 수술해 달라고 했지만 담당 의사는 그곳의 수술은 장담할 수도 없고 어머니가 노쇠해서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정기적으로 통원 치료를 받으며 통증을 완화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도 운 좋게 수술 후 몇 년 동안 괴롭히던 무릎 통증이 사라졌다.

그 후로 어머니의 안방이 입원실이 되었다. 거동이 힘드시다 보니 좁은 안방에 병원 침대를 들여놓고 생활하셨다.

어머니는 십이 년 전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왔다. 그전에는 아버지가 유달리 공기에 민감해 높은 곳을 선호해서 대로 건너편 언덕바지에 있는 집에서 십 년 동안 살았다. 하지만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픈 어머니에게는 오르락내리락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아버지도 연로하다 보니 힘들어 하셨다. 급기야 아버지는 언덕바지의 집을 팔고 평지에 있는 지금의 집을 샀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이사하기 전에 급병으로 세상을 떠나 새 집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셨다. 새 집에는 어머니 홀로 살게 되었다. 새 집에서 혼자된 어머니는 우울증을 겪으며 허리 통증은 물론 온갖 지병으로 고생하며 힘들게 살았다. 그래도 어머니는 삶의 끈을 놓지 않으셨다.

힘든 와중에도 다행스럽게 어머니에게는 낙이 있었다. 지척에 경로당이 있다는 게 행운이었다.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경로당에 가시는 걸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 아버지도 생전에 노인복지관에 다니시는 걸 낙으로 삼았었는데 어머니를 위해서 지금의 집을 준비해 놓으셨던 것 아닌가 싶다. 근처에 산이 있어 공기도 좋고 주변에 가게가 많아 생활하기도 편했다. 지금은 비록 허리가 악화되어 경로당에 자주 가시지는 못하지만 옆집의 동갑내기 할머니가 경로당에서 주는 반찬을 챙겨다 주곤 하신다. 경로당에서는 기부 물품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어머니에게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해 마련해 놓은 지금의 집이 소소한 행복을 얻을 수 있게 해 주는 보금자리다.

올해 미수이신데 몸이 안 좋으셔서 생신 때 잔치를 못 해 드린 게 아쉬움이 남아 있던 중에 어버이날에 전화를 드렸더니 경로당에 계시다고 했다. 주민 센터에서 경로잔치를 베푼다고 해서 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셨다. 아직은 힘들게라도 경로당에 다니시고 경로잔치에 가실 생각에 좋아하시니 다행스럽고 기뻐서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2024. 한국수필작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