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하루/ 장례식장 가는 길/ 김명석/ 문학한국
하나님의 은혜로 '이상한 하루' '장례식장 가는 길' 두 편의 시가
문학한국 2023년 9⸱10월호에 실렸습니다.
이상한 하루
생전 보지도 못한 고인의 장례식장엔
죽음을 피하지 못한 문상객들이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네
생전에 어떻게 사는지 관심도 없다가
왜 죽었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네
죽음의 그림자를 뒤꿈치에 붙이고
머지않아 돌아올 곳을 나서고 있었네
돈을 긁어모으는 음식점 앞에
죽음을 맛보려는 손님들이 장사진 쳤네
양은냄비에 빠져 익사한 닭을 사람들이 능지처참하고
시뻘건 피에 찍어 먹으며 만족하고 있네
음식점 안에 죽음의 냄새가 가득하네
을지로에는 죽음의 백일잔치를 위한
전야제로 장송행진곡이 연주되었네
달려오던 차들은 죽음을 피하려 우회하고
죽음의 정거장에서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산송장이 되었네
죽음은 정신줄을 놓은 나를
어둠속으로 끌고 다니며 희롱했네
너무 어두워서
소래포구 월곳 오이도에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자신을 알아볼 수 없었네
우회해 먼 길을 돌아와 깨어 보니
사지는 멀쩡하고 숨은 붙어 있었네
장례식장 가는 길
사촌 누나의 장례식장에 가는 길에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네
고인보다 열 살이나 많으시기에
볼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네
형들과의 약속 시간에 늦을까 봐
밖에서 잠깐 뵈었다네
잔뜩 굽은 허리를 지팡이로 지탱하고
땅속과 가까워지고 있었다네
그까짓 약속 시간이 뭐라고
그런 어머니와의 시간보다 중요하지도 않은데
옆 동네는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네
이주가 완료되고 철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네
이제 오래 산 집들은 인생처럼 사라질 거네
집들은 아파트로 재개발되어도
인생은 재개발이 안 된다네
지름길로 가려고 골목을 누비다 보니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네
큰길로 나와 가다 보니
가파른 박석고개를 만났다네
어머니의 허리처럼 굽어 있었네
숨넘어갈 듯 고개 위에 올라서니
눈앞에 장례식장이 보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