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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군대 이야기'가 동인지 가온누리 3호(2022년)에 수록되었습니다.

솔랭코 2022. 11. 26. 15:17

꽁트 '군대 이야기'가 동인지 가온누리 3호(2022년)에 수록되었습니다.

 

 

꽁트

군대 이야기

 

 

 

  전화위복

  용산역에 대기하고 있는 입영 열차 안은 논산훈련소로 가기 위해 승차한 사람들로 들끓었다. 플랫폼에도 입대하는 사람을 배웅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언제 고무신을 거꾸로 신을지 모르지만 눈물을 흘리는 애인, 아들을 걱정해서 우는 엄마, 응원하는 친구 등이었다. 최사명도 입대하기 위해 입영 열차 객실에 서 있었다. 승차 시간 보다 일찍 왔는데도 빈자리는 없었고, 제시간이 되자 삼분의 일 정도가 서 있었다. 앉아 있는 사람이나 서 있는 사람이나 대부분 굳은 표정이었고 옆 사람과는 서먹해했다. 최사명은 결연한 표정으로 지난 삼 개월을 회고하고 있었는데, 제시간이 훨씬 지나도 입영 열차는 출발하지 않았다. 한 시간쯤 되자 객실에 조교가 모습을 나타냈다. 객실의 사람들은 이제 정말 군대에 가는구나 싶어 표정이 더 굳어지고 긴장했다.

  “모두 일어서!”

  조교의 구령에 좌석에 두 명씩 앉아 있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일어섰다.

  “서 있는 사람들은 좌석 앞에 한 명씩 가서 선다.”

  서 있던 사람들은 옆의 좌석 앞에 한 명씩 가서 섰고, 최사명도 옆의 좌석 앞에 두 명과 간신히 나란히 섰다. 둘 다 최사명보다 덩치가 컸다.

  “모두 자리에 앉는다.”

  사람들은 좌석에 앉았는데, 비좁아서 한 명씩은 등받이에 제대로 기대지 못하고 앉았다. 최사명도 덩치들 옆에서 마찬가지였다.

  “동작 봐라. 모두 일어서!”

  사람들은 동작이 좀 더 빨라졌다.

  “그렇게밖에 못하나? 앉아!”

  사람들은 동작이 민첩해졌고, 조교의 앉아’ ‘일어서는 쉼 없이 반복되었다. 이윽고 조교가 마침표를 찍자 신기하게 모두가 등받이에 기대고 있었다. 최사명도 그 덕분에 등받이에 기대고 편안히 앉을 수 있었다.

  그동안에 플랫폼에서는 고등학교 절친인 홍남두가 사명아! 사명아!” 외치며 최사명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열차 객실 칸들의 차창 너머로 계속 찾아봤지만 발견하지 못해 애태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입영 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바퀴를 굴리자 홍남두는 떠나는 열차를 향해 아쉬워하며 손을 흔들었다.

 

  최사명은 입영 열차를 타기 전까지 삼 개월 동안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최사명은 대학교 이 학년을 마치고 휴학해서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징병 검사를 받은 후 징집영장을 받자 홍남두의 집을 방문했었다. 병환으로 누워 지내는 홀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삼대독자인 홍남두는 최사명의 소식에 맛있는 식사를 대접한다며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끓여 주었다. 문제는 최사명이 잘 대접받고 나서 알레르기를 일으킨 것이다. 최사명은 다음 날 아침에 대변을 봤는데 팔에 오돌토돌 발진이 돋아났다. 그는 그럴 때마다 피마자기름을 마시고 설사를 해서 나았기에 이번에도 그렇게 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은 심해졌다. 붉은 발진이 온몸으로 퍼졌고 햇볕을 쬐면 검게 변했다. 아버지를 따라 많은 병원을 다녔지만 치료는커녕 병명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불치병이라는 생각에 그의 심적 괴로움은 극에 달했고, 밤에는 수시로 문둥병 꿈을 꾸는 악몽에 시달렸다. 최사명은 그렇게 삼 개월 동안 고통을 겪었고 종국에 입대일이 되어 입영 열차에 오르게 된 것이다.

 

  논산훈련소에 들어가자 연무대에서는 입소한 사람들을 연병장에 앉히고 차례대로 신체검사를 실시했다. 최사명이 팬티 차림으로 군의관 앞에 서자 군의관은 최사명의 온몸에 퍼져 있는 붉은 발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군의관은 최사명을 문진했고, 문진을 받은 후 최사명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신체검사를 받았다. 다음 날에도 신체검사를 받은 사람들을 연병장에 앉혔는데, 조교가 최사명을 앞으로 불렀다.

  “전염병은 아니라서 훈련을 받아도 된다는데, 훈련받을래? 집으로 돌아갈래?”

  “집으로 돌아가면 이제 군대에 안 와도 되나요?”

  “무슨 소리야? 인마. 치료하고 다시 와야지.”

  “그럼 훈련받을래요.”

  다음 날부터 7월의 뙤약볕 아래서 고된 훈련이 시작되었다. 온몸에 퍼진 발진으로 인해 더 힘들었지만 최사명 훈련병은 정신력으로 버텨 냈다. 그리고 그렇게 훈련 기간이 끝나 갈 즈음이 되자 기적적인 일이 벌어졌다. 온몸에 퍼져 있던 붉은 발진이 싹 없어진 것이다. 많은 병원을 다녀도 못 고친 병이 4주 동안 뙤약볕을 맞으며 훈련받으면서 깨끗이 치료된 것이다. 최사명 훈련병은 오랫동안 뜨거운 햇볕을 맞아 발진의 근이 죽은 것이라고 확신하고, 남아서 훈련받기를 잘했고 다행이라고 여기며 기뻐했다.

 

  극기 훈련

  훈련소에는 고문관이라고 지칭하는 훈련병이 꼭 있다. 대표적으로 제식 훈련을 할 때 같은 쪽 손발을 함께 들며 걷는 훈련병이다. 우향앞으로가” “좌향앞으로가할 때 반대 방향으로 향한다든지, “뒤로돌아가” “걸음 바꿔 가할 때 헤매는 훈련병이다.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 후끈한 열기가 솟아오르는 연병장에서 최사명 훈련병은 제식 훈련을 쉼 없이 받고 있었다. 같은 조의 훈련병 중에 고문관이 한 명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조원들은 편안히 앉아서 쉬고 있는데, 최사명이 소속된 조는 제식 훈련을 모두가 동작이 맞을 때까지 한없이 반복해야 했다. 땀이 뻘뻘 흐르고, 가뜩이나 몸뚱이가 따끔거려 죽을 맛이었다. 겨우 동작을 맞추고 마칠 수 있었지만, 휴식 시간이 끝나 계속 훈련을 받아야 했다.

 

  훈련을 마치고 먹는 짬밥은 꿀맛이었고 밤에 자는 잠은 꿀잠이었다. 무더운 날씨지만 매트리스에 눕고 베개에 머리를 붙이면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이날은 시간이 한참 지나도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평상시와 달리 너무 더웠기 때문이다. 훈련병 모두 잠 못 이루고 뒤척이며 힘겨워하고 있었다. 원인은 라디에이터가 가동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열대야에 난방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사십 도가 넘는 실내 온도에 사타구니가 흥건했다. 두 시간 뒤에야 라디에이터는 꺼졌지만,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선잠을 잘 수 있었다. 왜 난방을 했는지 의아했는데 다음 날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 훈련병이 밤에 추워서 잠을 잘 수 없다고 소원 수리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불볕더위에 훈련을 받는 게 무척 힘들기는 하지만 이로운 점도 있다. 연무대에서는 일사병을 우려해 훈련 중에 휴식을 자주 취하게 했다. 더불어 휴식 시간도 더 늘어났다. 훈련을 마치고 밤에 생활관에서 자유롭게 취하는 휴식은 더할 나위 없었다. 편지를 쓰는 훈련병도 있고, 양말을 빠는 훈련병도 있고, 전투화를 닦는 훈련병도 있었다. 최사명 훈련병은 몸의 이곳저곳을 훑어보며 발진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는데 십 분 내로 팬티만 입고 연병장에 집합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훈련병들은 이내 하던 일을 멈추고 옷을 벗은 후 연병장으로 향했다.

  말로만 듣던 빰빠라지만 겨울도 아닌 한여름 밤에 연병장에서 팬티만 입고 있으니 오히려 시원했다. 이윽고 교관이 모습을 나타내고 단상에 올라섰다. 훈련병들은 구령에 따라 교관에게 거수경례를 한 후 부동자세를 취했다. 곧 어두운 가운데 교관의 정신전력 교육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갑자기 온몸이 따갑고 가려웠다. 최사명 훈련병은 부동자세 상태에서 움직일 수 없어 괴롭고 뙤약볕에 훈련을 받아 발진이 악화된 게 아닌지 우려되었는데, 눈치를 보니 많은 훈련병이 몸을 비비 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따가움과 가려움은 견디기 힘들 정도였지만 교관의 교육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소위 모기 회식이었다.

 

  사과 서리

  1980년대에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해 하루가 멀다 하고 데모하고, 전경들이 진압하기 위해 최루탄을 쏘아 대고 학생들이 맞서 화염병을 던져 전쟁터를 방불케 했지만 군대는 오히려 조용했다. 다만 최사명 이등병이 복무하는 행정 부대 옆에 있는 특수 부대인 차보대에서는 대원들이 늦더위에도 완전 무장을 한 채 데모가 일어나면 언제든지 출동해 진압하기 위한 훈련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최사명 이등병은 자대에 배치된 후로 잠을 자다가도 고참에게 집합되어 구타를 당하고 야구 방망이나 쇠파이프로 매질을 당해 날마다 군대에 1년 일찍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블록 담벼락 너머 그 광경을 보면 행정 부대에서 복무하는 게 다행이라고 여기며 다소나마 위안이 되곤 했다. 하지만 무법 정권이다 보니 군대도 무법천지나 다름없었다. 집합과 구타가 끊일 날이 없어 최사명 이등병은 뺑이 치더라도 일빵빵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최사명 이등병을 포함한 많은 졸병들은 소속된 과에서 업무를 보는 것보다 밖에서 훈련받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던 중 사단 정기 검열 시기가 되어 최사명 이등병이 복무하는 연대도 검열을 받기 위한 준비 훈련이 시작되었다. 가을에 접어들었지만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에 최사명 이등병이 소속된 본부 중대에서 행군을 하고 있었다. 하늘은 높아 가고 길가에 코스모스들이 각양각색으로 피어 있었지만 대부분 졸병에게 그렇듯이 최사명 이등병에게도 감흥이 일지 않았다. 다만 병사들은 여자만 보면 눈에 생기가 돌았다. 한 시간여를 행군한 무렵이었다.

  “중대, 제자리에 서!”

  내무반장의 명령에 중대원들이 행군을 멈췄다.

  “십 분간 휴식!”

  중대원들은 반색하며 길가에 주저앉아 M16의 개머리판을 땅에 대고 총열을 어깨에 댄 채 허리에 두른 수통을 꺼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목을 축이니 차츰 땀이 식고 열기가 가라앉았다. 오 분쯤 지났을 때 내무반장이 중대원들 뒤를 가리키며 졸병들에게 지시했다.

  “너희들, 저기 들어가 사과 따서 군복에 담아 와.”

  내무반장이 옷자락을 들어 올리는 시늉을 했다. 뒤를 돌아보니 그제야 사과밭이 눈에 띄었고 시뻘건 사과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최사명을 포함한 이등병 다섯 명은 지시에 따라 즉시 사과밭으로 들어갔다.

  이등병들이 사과밭에서 옷자락을 들어 올리고 사과를 따서 군복에 담기에 정신이 없을 때 한 여자가 앉아서 쉬고 있는 중대원들에게 미소를 띤 채 다가오고 있었다. 그 여자는 이 사과밭의 주인이었고 두 손에는 시뻘건 사과가 가득 담긴 소쿠리가 들려 있었다. 여주인이 가까이 오자 중대원들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때 이등병들이 사과밭에서 나왔는데, 비록 이때에는 서리를 도둑질로 간주하지 않던 시절이지만, 여주인과 눈이 마주친 최사명 이등병은 양심에 가책을 받아 깜짝 놀라며 옷자락을 놓쳤다. 군복에서 시뻘건 사과가 와르르 쏟아지자 여주인은 아연실색했고 이등병들의 불룩한 군복을 보자 맛이 가서 제자리에서 꼼짝을 못했다. 여주인이나 중대원들 모두 경직된 상태에서 적막이 흐르던 중 내무반장이 정신을 차리고 여주인에게 모두 돌려주겠다며 머리를 숙이고 사과했다. 여주인은 점점 혈색이 돌아왔고 내무반장에게 소쿠리를 건네주며 됐으니 모두 가져가서 맛있게 먹으라고 했다. 내무반장이 민망해하며 소쿠리를 건네받자 여주인은 시크하게 돌아섰다. 곧 중대원들은 내무반장의 지시에 따라 일동 일어나 여주인에게 감사합니다!” 하며 경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