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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놀' '호밀밭' 두 편의 시가 동인지 가온누리 3호(2022년)에 수록되었습니다
솔랭코
2022. 11. 26. 15:11
'저녁놀' '호밀밭' 두 편의 시가 동인지 가온누리 3호(2022년)에 수록되었습니다.
저녁놀
낮이 불타서
화톳불이 번져 가는 하늘가에
난연(赧然)한 시간이 숨죽인 채 침묵한다
경계를 넘나들던 바람은 잔잔하고
구름을 태우며 고즈넉한 향연을 펼친다
섬섬옥수로 빚은 비단결을 드리우고
충혈된 눈으로 목도하는 자태가 숙연하다
긴장이 풀려 퍼더앉은
낙조가 저녁을 채색하고
경각에 달린 하루를 위해 채혈한다
파란곡절 하루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황혼에 물비늘이 물결 따라 일렁여도
마지막 순간까지 고상함을 지킨다
꺼지기 직전의 저녁놀에
불살라진 산과 들과 바다가 검게 타 버리고
사윈 구름이 재가 된다
하늘가에 남겨진 설핏한 실핏줄이
마지막까지 여운을 남긴다
호밀밭
비탈을 미끄럼질해 내려온 햇살을 먹고
영글어 가는 초록빛이 수런거린다
깃을 펴고 서로 키 재기를 하느라 바쁘다
손을 활짝 펴서 오월의 물감을 쏟아부은 하늘 아래
노란 꽃이삭이 주렁주렁 매달려 종을 울린다
비를 머금은 낱알을 햇살이 말리며 부풀린다
사잇길로 들어온 남녀를 은밀히 감추어 주고
남녀 사이의 속삭임이 낱알에 스며든다
낱알에 농축된 달콤한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우뚝 솟은 블루애로우들이 밤낮 둘러서 파수한다
비탈에서 황소가 뿔이 나서 뒷발질하고
양 염소 토끼가 콧방귀를 뀌며 풀을 뜯어 먹고
양과 염소의 매에 매에 울음소리를
토끼가 큰 귀에 담아 자장가로 삼는다
언덕 위에 흰 구름이 하얀 집을 짓고
자전거가 바퀴를 굴리며 집을 옮겨 게르가 된다
어둠이 날개를 펴고 발톱으로 호밀밭을 집어삼킬 기세면
둥근달이 둥실 떠올라 달빛을 비쳐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