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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 '커피로스터스 카페의 한잔' 두 편의 시가 '문학한국' 2022년 10⸱11월호에 실렸습니다

솔랭코 2022. 11. 2. 15:13

'처서' '커피로스터스 카페의 한잔' 두 편의 시가 '문학한국' 2022년 10⸱11월호에 실렸습니다

 

처서

 

 

아침저녁으로 더위가 이불에 접히고

여름의 발뒤꿈치가 문지방에 걸린다

금싸라기 땅을 잠기게 했던 굵은 빗줄기의

종아리가 가늘어져 미약한 파동이 인다

여름내 더위 먹은 짐을 등에 짊어지고

휘청거리는 발걸음이 논두렁을 어술렁거린다

하늘을 검게 물들인 천둥소리에 놀란

매미의 비명이 나무껍질에 붙박이고

색바람이 솜사탕을 살살 퍼트려

풀잎에게 회초리 맞은 귀뚜라미가 서곡을 연주한다

이삭이 팬 벼가 머리에 든 게 많아 겸손해지는 논에

여름에 그을린 참새 떼가 가을을 펄럭이고

십자가를 몸에 지닌 허수아비가 목발을 짚고 고군분투한다

여름도 더위에 지쳐 그늘에서 한숨 돌리고

펄럭이는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힌다

뒷다리에 힘을 주고 여름을 성큼 뛰어넘은

위장술에 능한 메뚜기가 나락에 앉아

더듬이를 세우고 가을과 교신한다

공방이 치열한 여름과 가을의 전선에

일기도가 변하고 있다

 

 

커피로스터스 카페의 한잔

 

 

길을 내고자 맨땅에

잣대를 대고 선을 그었으나 비뚤배뚤했다

맨땅은 음지와 양지로 요철해

넘고 넘어야 하는 첩첩산중이어서

길을 닦기에 어려운 고개가 많았다

눈에 새겨진 눈금의 잣대질이

요철을 만들어 평탄하지 않았다

 

요철한 기와지붕을 받친 서까래 아래

마루가 통창을 통해 쏟아진 햇살로 닦고 닦아

뭉개도 엉덩이가 접히지 않을 정도로 평탄하다

반듯한 차탁 앞에 비딱하게 앉아도

무게 중심을 잡은 찻잔이 비딱하지 않다

 

통창을 뚫고 들어온 햇살로

로스터가 요철한 하루를 볶고

바리스타가 그라인더로 갈아 핸드 드립 한 하루가 보드랍다

햇살을 리필 한 찻잔 속의

향기가 은은히 하루에 배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