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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춧잎 한 장의 행복

솔랭코 2021. 4. 22. 18:42

배춧잎 한 장의 행복

 

 

길바닥은 말 그대로 길바닥

집 나온 길고양이의 고향은 길바닥

길바닥을 딛는 발바닥

발바닥이 하나여서 서러운 조막손 비둘기

길바닥이 고양이를 삼킨다

 

오죽했으면 집 나온 길냥이 신세일까, 하고 길바닥이 혀를 찬다

노숙자는 천적을 피하기 위해 옷 색깔을 길바닥 색깔에 맞추었다

아침에는 비둘기보다 일찍 밤에는 고양이보다 늦게

쓰레기봉투의 옷고름을 풀어야 한다

야들야들한 컵라면 엉덩이를 매만지니

컵라면 밑바닥에 고인 라면스프국물이 찔끔거린다

노숙자의 혀를 달콤하게 핥는 라면스프국물

 

햇빛이 양지바른 벤치에 앉아 일광욕하는 노숙자의 때를 밀고 있다

  이 녀석들이 때를 빤다

불쑥 햇빛을 삼킨 검은 그림자가 벗어 내미는 새하얀 트렌치코트

아 이 양반아 이런 옷은 빨기도 힘들어.”

 

빛을 잃은 노숙자가 진종일 먹은 것이라곤 라면스프국물 찔끔

길바닥이 비틀거린다

길바닥이 노숙자를 삼킨다

불쑥 검은 그림자가 길바닥에서 따서 내미는 배춧잎

놀란 노숙자의 코가 길바닥에 닿는다

 

노숙자는 말 그대로 노숙자

빛이 환한 따사로운 춘삼월 노숙자가 둥근 의자가 되어 봄잠을 자고 있다

불쑥 춘몽을 깨우며 검은 그림자가 내미는 따끈한 왕컵라면

빛이 보이며 왕컵라면의 스프국물 향기가 라일락꽃 향기만큼 향기롭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9:48

**2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