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랭코 2020. 9. 3. 10:49

주인

 

 

나의 주인이 누구인지 내 혀도 알쏭달쏭한데

내 얼굴에 찍힌 낙인을 보고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내 눈은 그 누군가가 나의 주인인 것을 눈치챈다

 

나의 주인이 누구인지 내 귀도 아리송한데

누군가 내 묘비의 일련번호를 보고 전화를 걸어 온다

내 귀는 그 누군가가 나의 주인임을 알아차린다

 

나 자신보다 더 내 이름을 불러 주는 타인

나 자신보다 더 나에게 전화해 주는 타인

 

바닥에 시간을 깔고 공기를 덮고 잠자는

나를 고독이 깨울 때

비로소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린다

 

나의 묘에는 고독이 묻혀 있다

고독이 묘비에 기록해 놓은 내용은

청맹과니가 앞을 볼 수 있을 때 볼 수 있다

 

그때에야 알 수 있겠지만

묘비에는 타인만 아는 문구가 적혀 있다

 

나는 누구의 주인이었는가?

나는 주인 노릇을 제대로 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