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아쉬운 뽀삐

솔랭코 2020. 6. 2. 10:24

아쉬운 뽀삐

 

 

평범한 얼굴과 통통한 몸집에

족보 없는 똥개지만

주인이 밖에서 돌아오면 꼬리를 치고

사람보다 더 반겨 주던 개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오면

오토바이 소리와 냄새에

꼬리를 흔들고 캑캑거리고 짖으며

반기던 한결같던 개

 

민방공 대피 훈련 사이렌이 울리면

늑대처럼 우우 하울링 하며 노래하던 개

쥐 소리가 나면 흥분해서 테리어처럼 쫓아다니고

아침에 마당 하수구 앞에 새끼 쥐들을 늘어놓고 자랑하던 개

똥오줌이 마려우면 낑낑거리다

대문 밑으로 빠져나가 대소변을 가리던 개

시도 때도 없이 배가 불러

많은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고도

제 새끼가 찾아오면 달려들고

낯선 사람에게 으르렁거린 사납던 개이지만

주인에게는 충성스럽던 개

 

마른오징어를 사 와 가스 불에 구우면

개집에서 나와 환장했는데

왜 조금이라도 더 찢어 주지 않았는지 아쉽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몸까지 흔들며 반가워했는데

왜 한 번도 제대로 쓰다듬어 주지 않았는지 아쉽습니다

추운 겨울이면 몸을 잔뜩 웅크리고 벌벌 떨며 잠을 잤는데

왜 한 번도 따뜻하게 덮어 주지 않았는지 아쉽습니다

노견으로 무더운 여름에 이슬로 사라졌지만

죽어서도 충견이었던 뽀삐

이십 년이 된 지금에도 못내 눈에 밟힙니다

 

그 미안함과 못해 준 사랑을

앞으로 계속 갚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