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무라 지구의 사무라이 기개와 자취(그린 대마도 12)
나카무라 지구의 사무라이 기개와 자취
오백여 년 전 무로마치 시대
사무라이 기개가
소 사다쿠니의 발길로
이즈하라에 자취를 새겼으니
쓰시마 초대 번주
소 요시토시의
웅대한 꿈을 펼치던 모습에
기개가 넘치는구나
삼백오십 년 묵은 청청한 소나무
고즈넉한 돌담의
나카무라 저택에
사무라이의 웅장한 기개와 역사가 서리어 있고
이즈하라 항구의 바닷물이
지난 사무라이의 세월을 품고
내에 고고히 흐르는구나
역사의 나카무라 지구에
사무라이의 기개와 자취가
오롯이 역력하구려
<2016.7.29. 대마도 둘째 날 아침에 이즈하라 나카무라 지구를 산책하며>
나카무라 저택
무로마치 시대, 소 씨가 대마도를 지배하던 때에, 쓰시마 10대 도주 소 사다쿠니가 이즈하라로 이주해 와 이곳에 지은 저택으로, 이후 나카무라 저택이라고 불려 왔다.(안에 희미하게 보이는 동상은 쓰시마 초대 번주 소 요시토시의 동상이다)
나카무라 지구의 나카무라 거리
나카무라 지구는 원래 헤이안 시대에 만들어졌으나, 현재의 모습은 간분시대(1660년대)에 무가저택마을 만들기 계획으로 만들어 진 것으로, 돌담이나 무가저택의 문 등 당시의 분위기가 많이 남아 있다. 여기에도 오래된 양철집이 보인다.
나카무라 지구의 무가 돌담 저택들
옛날 일본의 돌담집은 부를 상징한다. 나카무라 지구에는 이런 돌담집들이 많이 있다. 다른 집들도 좀 더 보자.
나카무라 지구의 덩굴 저택
나카무라 지구의 정원 저택
나카라이 토스이 생가
메이지 시대 일본 최초의 여류 소설가인 히구치 이치요의 스승이자 연인으로 유명한 나카라이 토스이의 생가이자 문학관이다. 당시 32세이던 나카라이 토스이는 제자가 되기 위해 찾아온 20살의 히구치 이치요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히구치 이치요는 25세에 요절했다. 그런데 히구치 이치요는 스승인 나카라이 토스이보다 더 유명하고, 마치 우리나라의 신사임당처럼 일본의 5,000엔짜리 지폐에 얼굴이 새겨져 있다. 나카라이 토스이는 아사히신문 기자 시절 아사히신문에 춘향전을 20회 연재해 한국과 친근하다.
나카무라 지구 일대
나카무라 지구에는 대마도의 역사와 문화가 깊이 서려 있고 살아 숨쉬고 있다. 나카무라 지구는 나가사키현 '마을 만들기 경관자산'으로 지정되어 있다.